Face Mirroring: 관계가 비춘 얼굴
삼세영 기획전
2026. 9.2 - 10.17
Artist
조현서
Description
작가노트 ㅣ
조현서
이번 전시 《Face Mirroring: 관계가 비춘 얼굴》은 내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FACE〉 작업과 Machine Drawing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해 보여주는 자리다. 나에게 FACE는 단순한 얼굴의 이미지가 아니다. FACE는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살아오며 겪은 감정, 상처, 방어, 기대, 오해, 회복의 시간이 응축된 결과다. 그리고 Machine Drawing은 그 얼굴을 만들어내는 나의 조형 언어이자 문법이다.
나는 오랫동안 얼굴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내가 만들고자 한 것은 특정 인물의 외형이 아니라, 관계가 인간 안에 남긴 흔적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 속에 놓인다. 사랑과 기대, 상처와 오해, 연대와 갈등, 인정과 배제는 우리의 감정을 통과하고, 결국 얼굴에 남는다. 얼굴은 감정을 표현하는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삶의 시간이 퇴적되는 장소이며, 사회와 타인의 시선이 새겨지는 표면이다.
《Face Mirroring》에서 얼굴은 거울이 된다. 그러나 이 거울은 단순히 외형을 비추는 투명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반사면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사회의 평가 속에서 자신을 조정하며, 관계의 균열 속에서 상처를 발견한다. 얼굴은 나의 것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이 지나간 자리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는 얼굴 안에는 이미 수많은 타인의 흔적이 스며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부제인 “관계가 비춘 얼굴”은 내 작업의 핵심을 압축한다. 얼굴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얼굴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상처 속에서 흔들리며, 다시 자신을 세우는 과정 속에서 변화한다. 내가 작업하는 얼굴은 완성된 초상이 아니라 계속 생성되는 정체성의 장면이다. 그것은 개인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얼굴이고, 상처의 표면이면서 회복의 표면이다.
이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언어가 Machine Drawing이다. 나는 재봉틀을 붓처럼, 연필처럼 사용한다. 실은 나에게 물감이자 선이며, 바늘은 감정을 통과시키는 도구다. 실의 굵기와 재질, 재봉틀의 속도, 바늘땀의 간격과 압력을 조절하며 천 위에 수많은 바느질 선을 만든다. 그 선들은 단순한 봉합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의 표정과 몸짓,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드로잉이다.
재봉틀은 본래 차갑고 기계적인 도구다. 기계는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오직 일정한 속도로 선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을 발견한다. 감정을 갖지 않은 기계가 만들어낸 반복된 선들이 어느 순간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차갑게 반복되는 선은 따뜻한 기억이 되고, 기계적 리듬은 불안한 호흡이 되며, 실은 피부가 되고, 수없이 교차한 선들은 하나의 얼굴이 된다.
나의 Machine Drawing은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얼굴의 표정과 신체의 동세를 더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패션 드레이핑 방식을 응용하고, 천을 자르고 접고 겹치고 덧붙인다. 그 과정에서 인물은 화면 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부조와 입체적 형상으로 확장된다. 특히 입체 작업에서 바느질 선은 표면을 장식하는 선이 아니라 형태를 만들고, 감정을 세우며, 존재감을 부여하는 구조가 된다.
반복되는 바느질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이다. 그것은 치유인가, 노동인가, 아니면 생존의 기록인가. 나는 이 질문을 하나로 선택하지 않는다. 바느질은 실제로 육체적 노동이다.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기계의 속도에 몸을 맞추며,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 반복은 단순한 노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시간은 기억을 통과하면서 수행이 되고, 감정을 통과하면서 치유가 되며, 삶을 통과하면서 생존의 기록이 된다.
바느질은 찢어진 것을 봉합하지만, 봉합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밥은 남고, 결은 남고, 표면은 이전과 달라진다. 나는 그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적을 작품의 중심에 놓는다. 상처를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읽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표면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에게 Machine Drawing이다.
이번 삼세영 개인전은 이러한 작업 세계가 대표작을 중심으로 하나의 강력한 구조를 갖추는 전환점이다. 대형 평면 작업들은 다수의 얼굴, 웃음, 붕대, 꽃, 손짓, 군중의 표정을 통해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얼굴을 보여준다. 밝고 유머러스한 표정 뒤에는 상처와 방어, 불안과 생존의 감각이 겹쳐 있다. 입체와 부조 작업은 Machine Drawing의 선이 평면을 넘어 몸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이 작품들은 모두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흔들리며, 어떻게 다시 자신을 세워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연속된 장면이다.
나의 〈FACE〉 연작은 얼굴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다. Machine Drawing 역시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기 위한 작업만은 아니다. 이 두 작업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기계는 어떻게 인간을 기록하는가. 인간은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가. 그리고 사회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얼굴은 어떻게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가.
《Face Mirroring: 관계가 비춘 얼굴》은 상처를 극복했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 전시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다시 자신을 세우려는 인간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 속 얼굴들은 관람자를 바라보는 동시에 관람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관람자는 그 얼굴들 앞에서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관계의 흔적, 말하지 못한 감정, 감추어 온 표정을 조용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얼굴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자리다.
FACE는 그 언어의 형상이고, Machine Drawing은 그 언어의 문법이며, 반복되는 선은 인간 존재를 기록하는 시간이다.
나는 기계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선을 통해 감정을 기록하며, 얼굴을 통해 관계를 증언한다.
결국 나의 작업은 얼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에 대한 기록이며, 기계의 반복 속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발견하려는 하나의 긴 서사이다.
전시 서문 ㅣ
이현정 큐레이터
얼굴은 관계를 비추고, 관계는 다시 얼굴을 만든다.
조현서 작가의 작업을 20여 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작가는 얼굴을 꾸준히 다루면서도 그 얼굴을 통해 던지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 인간과 관계, 소통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얼굴은 관계의 거리와 타인의 시선을 지나 상처와 회복의 표면이 되었고, 이제는 상처를 품은 채 다시 타인과 연결되는 가능성을 바라본다.
〈人-함께하기〉를 비롯해 〈희·노·애·락〉, 〈Monodrama〉, 〈샐러리맨〉, 〈Contact Telepathy〉 등의 초기 작업에서 얼굴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감정이 축적되는 장소였다. 특히 2007년 무렵부터 얼굴은 외형적 닮음을 재현한 초상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새겨진 기록으로 구체화된다. 2009년 〈FACE〉에서 서로 어긋난 눈·코·입은 하나로 완결된 표정과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번 전시의 제목 《Face Mirroring》에서 ‘거울’은 자기 자신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를 보고, 나의 얼굴을 통해 다시 타인을 바라보는 관계의 왕복이다. 작가가 말하는 인드라망[1]처럼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관계의 흔적이 스며 있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규정하고 가두기도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드러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시선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를 좁히고 무엇이 나를 넓히는지를 알아가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와 시간의 흔적은 작가의 Machine Drawing에서 천과 실에 새겨진 선으로 드러난다. 재봉틀의 규칙적인 운동과 천을 이끄는 손의 힘이 맞물리면서, 기계가 반복해 내는 선 안에 인간의 호흡과 흔들림이 스며든다. 반복되는 바느질은 노동인 동시에 기억과 감정을 통과하는 시간이 된다. 바늘이 표면을 뚫어 상처를 내고 실이 그 틈을 다시 잇듯, 조현서에게 회복은 상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과거의 〈FACE〉와 오늘의 〈FACE〉 사이의 전환이 선명해진다. 과거의 〈FACE〉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버티는 얼굴이었다면, 오늘의 〈FACE〉는 상처를 지닌 채로도 다시 타인과 연결되는 얼굴이다. 상처와 불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고도 타인과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작 〈CHAMPION〉의 수많은 얼굴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어느 하나의 얼굴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관객은 그 얼굴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는 동시에 자신과 다른 타인을 만난다. 자신을 알아보는 일과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조현서는 20여 년 동안 얼굴을 그려왔지만, 어쩌면 그가 계속 알아가고 있었던 것은 얼굴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남기는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계는 얼굴을 만들고, 얼굴은 다시 관계를 비춘다.
《Face Mirroring》의 얼굴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왔는가. 타인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우리는 상처를 지닌 채 다시 만날 수 있는가.
그 얼굴들은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다름을 품으며, 상처를 가진 채 다시 연결되기 위해 우리 앞에 머문다.
[1] 인드라망(因陀羅網): 불교 화엄경에서는 제석천의 궁전에 드리워진 보석 그물로 비유하며,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추고 의존하는 상호 연결성을 상징합니다.